실내금연이 상식처럼 되어버린 세상에서 이제 흡연자들은 그렇게 건물 밖으로 아니 세상 밖으로 불가피하게 밀려나온다. 쾌적한 건물 안으로부터 시끄럽고 번잡한 거리로, 그건 그러니까 말하자면 마치 현대 문명의 '바깥'에 처한 미개인의 처지로 몰린 흡연자에 대한 은유를 떠올릴 수 밖에 없게한다. 너희 흡연자들은 당연히 이 '문명'안에 있어선 안돼. 너희들은 현대의 미개인이니까. 흡연을 위해 밖으로 나올때마다 이런 종류의 이물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잃는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랄까. 하는 일도 다르고 그전에는 서로 전혀 알지못하던 낯선 타인들이 흡연을 위해 한 장소에 옹기종기 모여들고 안면을 트고 잡담을 나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지명과 춘교도 그렇게 만난다. 이 영화는 불같은 연애의 한복판도, 지리한 권태도, 장황하거나 아니면 감상적이기 짝이 없는 이별도 아닌 연애의 시작점을 다룬다. 지명보다 연상인 춘교에겐 이미 5년째 같이 살고있는 애인이 있다. 이십대 시절에 숱하게 거쳤을 밀고당기기의 필요를 느끼지못하는 그녀는 보다 직접적이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며 관계의 이니셔티브를 선취한다. 서로의 담배불을 붙여주는 사이로 시작해 두사람은 담배를 매개로 관계를 확장해나가고 조금씩 천천히 연인으로서의 관계 전환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 )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던 생각은 이런 거였다. 같은 기호를 공유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 이상의 새로운 관계의 진전이 진정 가능한걸까? 그건 충분조건이 되는걸까? 그럼 같은 기호를 공유한다는건 도대체 뭘 의미하는걸까? 영화는 두사람을 포함해 주변의 인물들, 그러니까 다른 흡연 친구들이나 전 애인의 인터뷰를 중간중간 보여주는데 거기서 그들은 한결같이 내내 사랑의 불능성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려고하는 지명과 춘교 두사람 사이의 본래 스토리와는 정반대로 어긋나며 이탈하고있는 이 가짜 인터뷰들이야말로 팡호청이 진짜 하고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게다가 영화 말미 이제 두사람은 금연을 다짐하기에 이른다. 두사람을 만나게했던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했던 공통의 기호가 사라진 바로 이 시점에서 이들의 사랑은 진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다. 두사람을 매개해왔던 바로 그것이 사라진 지금, 두 사람의 연애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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