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이 드라마의 핵심 모티프는 남성 살해 그리고 그 밑에 흐르는 정서는 남성에 대한 공포 혹은 혐오다. 다섯편의 에피소드 전부에서 각 에피소드의 여주인공들은 어떤 남성을 직접적으로 살해하거나 혹은 죽게 만든다. 마지막 에피에서만 직접 살해를 하지않지만 그것도 어쨌거나 간접적 혹은 우회적 살인으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것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젠더 종속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젠더상의 위계 전복이라는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 가장 편리할테지만 어쩌면 이 드라마가 진짜 말하고자하는건 더 냉소적인 것 같다. 네명의 소녀들이 갖는 트라우마 중엔 친구의 죽음을 막지못했다는 죄책감 외에도 죽은 아이에 대한 계급적 열등의식이 굳게 자리하고있고 이는 소녀들로 하여금 각기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속죄를 이해하게한다. 이를테면 세번째 에피에서 일명 '곰 소녀'는 다른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약자를 구하겠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친오빠를 살해하는데 그것은 두번째 에피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고백하는 것이기도하다. 살해 당시 자신은 타인을 구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15년전 당시에 자신을 이입시켜 그 당시에 했어야할일을 지금 비로소 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네번째 에피의 여주인공의 대응은 좀 놀랄만하다. 그녀는 애초부터 그따위 저주같은 속죄강요에 응하지않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에피의 전반적 내용이 사랑과 전쟁에나 나올법하다고 폄하하는 시청자들도 더러 있는 모양이지만 그러나 그녀는 유일하게 남성이 아닌 여성을 (그러니까 언니를) 질투하면서그 대상으로서의 남성을 착취하는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기도하다. 그래서 그녀의 형부살해는 가장 주체적인 살해행위라 할만하다. 그러니까 성장한 네소녀는 저마다 자신의 방식대로 속죄를 이해하고 자신들은 그것을 해냈다고 말하지만 아사코가 곰소녀에게 말하는 바대로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excuse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비록 아사코는 곰소녀에게만 말했지만 이는 곧 그들 모두에게 똑같이 전하는 메시지이다. 정작 약자를 보호하려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려했음을. 상징적 폭력행위를 행한 두번째 에피 주인공에게 원래는 교감에게 가하려했던 복수의 주먹을 날리는 동료선생의 행위가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즉 이들은 나름대로의 복수를 했는지 몰라도 속죄를 한것은 아니다. 아니 그 이전에 그들은 어쩌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고 값을 치루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하고보자니 정작 진짜 복수가 행해지는 마지막 에피에 오면 좀 이상해진다. 숨겨왔던 비밀이 드러나고나면 이 드라마 전체에서 정말 유일하게 속죄를 해야할 사람은 바로 아사코 혼자뿐이기때문이다. 피해자인줄 알았던 아사코는 알고보니 이 길고 길었던 원한의 시작점에 있었던 최초의 가해자이기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복수의 길에 나서고 그 결과는 실패이고 진정한 속죄, 영원히 끝나지않을 속죄의 시작이다. 그는 딸의 복수는 했는지 모르겠지만 딸의 아비를 죽음에 이르게했고 애초에 원한을 만들었으되 그것을 확실하게 끝맺음하지도못했다. 자신이 범인이 되고자했지만 그것마저도 실패. 애초에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알았기에 살인죄를 뒤집어쓰려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함으로써 이제 그녀에게 남은건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속죄를 할 대상도 방법도 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시초의 가해자인 그녀의 입장에서 딸의 살인자가 본디 그녀가 연모했던 사람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남성에 대한 공포나 혐오라는 그 이전까지 에피에서의 일관성마저 깨져버린다. 애초에 딸 에미리가 문제의 편지를 발견하게되는 그 우연을 보고있노라면 마지막에 와서 극 전체의 일관성도 개연성도 모두 깨져버려서 잘 가다가 마지막에 망해버리는 드라마가 되어 버린 셈이다. 남성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남성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어하는데 따른 두려움 그리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남성을 원하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따른 여성들이 갖는 남성에 대한 근원적인 양가감정과 그 혼란에 대해서, 또 그것은 어떤 식으로도 보상받거나 해소되지않는다는 것을 <속죄>는 서늘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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