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보다는 가십, 정사보다는 야사에 가까운 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60년대말 시작된  뉴아메리칸 시네마에 대한 피상적이고 선입견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하면서도 동시에 낯설게하기를 하고 있다. 영화 내적인 텍스트만이 아니라 이 무브먼트를 이끌었던 감독, 제작자, 배우 등의 주역들이 실제로 남성성을 과시하다 못해 테스토스테론 과잉에 의한 흥분상태였음을 설명하는데 집중하는 서술이 선입견을 극대화한다면, 다른 한편으로 뉴아메리칸시네마의 최전성기는 1970년 이전이고 이 해를 정점으로 그 직후부터 서서히 그 에너지가 쇠하기 시작했다고, 즉 뉴아메리칸 시네마란 이후 다시는 업계에서 재기하지 못하고 스러진 일련의 실패한 남성 감독과 제작자들의 짧지만 영화로웠던 화양연화같은 그런 시절이었다는 시각은 낯설다고 할 수 있겠다.

 

구체적으로, 이 책이 야사인건 심도있는 작가론이나 평전, 약사(略史)라기보다는 서술 전체가 약물을 포함한 여러 일탈, 거대 스튜디오와의 갈등, 그리고 온갖 여성들과의 장황한 연애담 이 세가지 패턴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특이한건 저자가 이 시기를 철저히 여성이 배제된 남성들만의 서사로 규정하고 따라서 그 안에서 여성이 얻은 분량이라곤 상시적 흥분과 분노 상태였던 남성 제작자와 감독, 배우들의 연애 상대이자 섹스 파트너로 철저하게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성차별적 시선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가지가 이 책의 중심서사 즉 이 마초 남성들이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해 메이저 영화사와 얼마나 처절하게 싸워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스튜디오를 배제하고 조금이라도 더 자신들의 창의성을 구현해내려 노력했는가에 대한 신화 내지 전설 만들기에 할애되어 있다. 워런 비티, 조지 루카스, 스필버그, 할 애쉬비, 데니스 호퍼, 피터 보그다노비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윌리엄 프리드킨 같은 감독, 로버트 타운, 폴 슈레이더 같은 각본가(출신의 훗날 감독들), 그리고 이들과 뜻을 같이하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인디제작 방식을 일찍이 시도했던 버트 슈나이더같은 명 제작자까지 이 불같은 남성들이 무엇을 원했고 어떻게 그 뜻을 이루었으며 또 어떻게 실패했는지 온갖 트리비아와 일화들이 실려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의 관점이란 이런 것이다. 이 남성들은 마약과 여자가 없이는 도저히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사내들이었고 때로는 이 셋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뭐가 먼저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의 감독들 중에서 스필버그와 루카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그 짧은 전성기 이후 처절하게 실패하다가 할리웃에서 거의 매장되다시피했다는 저자의 관점이다. 70년 이후 실패작들의 연속으로 이들은 업계 밖으로 쫓겨났고 이후로는 그저 변변한 경력을 가까스로 이어갔을 뿐이라는건데 이는 너무 매몰차다. 보그다노비치의 경우 더러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드팔마나 스콜세지는 어떤가. 라펠슨과 애쉬비도 충분히 우호적인 평가를 받을만한 커리어를 이어갔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이 출간되고 20년도 더 지난 올해 그것도 공교롭게 이 책을 읽을 즈음 폴 슈레이더가 실로 오랜만에 <First Reformed>로 비평적 성과를 거두면서 아카데미 후보 지명을 받았다. 

 

케네디 암살과 워터게이트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와 패러디로 가득한 코미디를 주로 만들던 독립영화 감독 브라이언 드팔마는 어떻게 스릴러 전문 감독으로 거듭났는지, 촉망받는 신예 평론가였던 슈레이더와 보그다노비치는 어떻게 미국영화계를 짊어질 젊은 거장으로 올라섰는지, 유능한 편집자였던 할 애쉬비가 어떻게 스스로 각본을 쓰고 감독이 될 수 있었는지, 주체할 수 없던 자신의 창조력을 비즈니스와 어떻게든 연계하려 워런 비티가 얼마나 분투했는지, 남다른 사업감각을 갖고 있던 조지 루카스가 어떻게 할리웃의 실세가 될 수 있었는지 등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속도감있는 문체, 그리고 무엇보다 야사에 걸맞는 번역자의 무자비하게 자의적인 한글 외래어 표기와 조악한 구어 번역 등과 맞물리며 스포츠신문이나 주간지같은 타블로이드지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당연히 이런 가십지를 읽을 때면 드는 의심을 피하기도 어렵다. 글의 신뢰도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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