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의 머릿속은 지금 너무 복잡하다. 과연 그날밤 일은 사고였을까? 아니면 자기같은 프로페셔널에 의한 고도의 계획적 살인이었을까? 이제 그는 왠지 수상스러워보이는 의뢰인의 아버지 (그러니까 작업대상)의 보험중개인의 뒤를 쫓기 시작하고 급기야 그의 집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의문은 조금씩 확신으로 바뀌어가고 브레인은 이제 그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그런데, 과연 그의 의심은 맞는걸까? 그가 저지른 단 한가지 실수는 곁에 자신의 의심을 확인해줄 주변 사람이 전무하다는 것, 즉 그가 철저히 혼자였다는 것이다. 설사 그의 팀원들이 살아있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않았을 것이다. 애초부터 그는 그 누구도 믿지않는, 철저히 혼자인 남자였으니까.

<conversation>의 홍콩식 리메이크쯤될까. 수사하는 자, 혹은 감시하는 자의 인식론적 한계에 대한 이야기. 이미 <conversation> 자체가 <blow up>의 할리우드적 변주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accident>까지 이 세편의 영화를 서로 찬찬히 대조해보는 것도 재미있을듯하다. 첫번째 '작업'을 끝낸 다음 일상으로 복귀하는 고천락의 행적을 뒤쫓는 장면을 보고있으면 <conversation>의 진 핵크만을 떠올리지않기가 어렵다. 혼자서 음모론을 구상하고 분노하고 복수하고 망연자실해하는 일련의 과정은 특유의 비약과 허장성세로 가득찬 홍콩식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미국이나 유럽의 작가주의 스릴러들을 떠올리게하고 특히 흡사 안토니오니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마지막 엔딩 컷은 무척 인상적이다. 출연 배우가 적은 대신 그 모든 배우들이 비중은 적더라도 다들 자기만의 확실한 분량을 갖고서 서로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데 그래도 역시 두 주인공인 고천락과 임현제가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다. 특히 고천락은 <흑사회>연작에 버금갈 정도로 멋있게 나온다. '미친듯이' 영화를 빠르게 찍고 있는 배우인지라 그의 영화를 다 찾아보는건 애초에 힘들긴하지만 어쨌건 들쑥날쑥한 그의 필모중에서 내가 본 중엔 외모와 연기 모두 거의 최상의 수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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